• 2024년 11월 23일
출처: 21세기북스
   

‘신평화’의 원천을 찾아서

―제프리 D. 삭스, 이종인 옮김, 『존 F. 케네디의 위대한 협상』, 21세기북스, 2014

이동기(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한국 권력자는 ‘자유통일론’의 깃대를 세웠고 북한(조선) 권력자는 “적대적 양국 관계”를 초들며 ‘영구분단’의 길을 찾는다. 한때 ‘한반도형’ 평화 형성을 말하던 이들은 무력하고 망연하다. 기묘한 위안거리는 한반도만 ‘평화의 불가능성’에 직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1세기 중반 현 세계질서를 신냉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치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푸틴과 트럼프를 나란히 세우면 둘로 보이지 않고 하나로 보일 때가 적지 않다. 유럽 국가들 도처에서 위세를 떨치는 극우 포퓰리스트를 보면 ‘가치동맹’의 뜻을 한참 따져도 머쓱하다. 전통적인 열전도 부활했고 낯선 기후전쟁도 잦다. 다극체제라고 말하기에도 어색한 세계무질서가 형태를 갖추었다.

신냉전이든 무질서든 그것을 극복할 지혜의 탐색은 20세기 후반 탈냉전 평화정치의 경험을 비껴갈 수 없다. 냉전 위기 극복의 가장 찬연한 말과 행동은 존 F. 케네디에서 등장했다. 서독 평화정치가 빌리 브란트도 케네디의 연설과 실천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자주 밝혔다. 저자 제프리 D. 삭스는 『존 F. 케네디의 위대한 협상』(원제는 ‘세상을 움직이다―평화를 위한 JFK의 탐색’)에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3년 11월 암살되기 직전까지 행한 네 연설을 살펴 평화정치의 원형을 살렸다. 그 책은 케네디 암살 50주년인 2013년에 발간되었지만 미국의 영웅적 정치가에 대한 흔한 헌사와는 다르다. 그것은 케네디의 자질이나 인품이 아니라 평화 구상과 의지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삭스는 케네디가 1961~62년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극복하고 1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로 양국 간 핵실험 부분 금지조약의 통과를 위해 노력한 이유와 배경을 밝혔다. 책의 앞부분은 그 과정을 소상히 다루었다. 쿠바 핵 위기 당시 케네디는 소련이 체면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냉전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았다. 케네디가 후일의 평화정치가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군사적 대결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군 참모들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로서 현실적인 평화 구상을 발진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평화는 능동적 의지의 산물이자 “많은 행위의 총합”이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케네디의 연설들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평화정치의 언어와 수사, 정신과 논리의 중심을 가로질렀다. 케네디는 연설문 작가 테드 소렌슨의 도움을 받아 언어의 리듬을 개발하고 수사의 함축을 살렸다. 새 시대를 열려면 새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63년 6월 10일 아메리칸대학교 졸업식 연설, 6월 28일 아일랜드의회 연설, 1963년 7월 26일 핵실험 부분 금지조약에 관한 대국민 연설, 1963년 9월 20일 8차 유엔 총회 연설. 삭스는 네 번의 연설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연설인 1963년 6월 10일 아메리칸대학교 졸업식 연설에 특히 주목했다.

삭스는 ’평화전략‘으로 불리는 첫 연설을 다루면서 평화정치의 전제에 주목했다. 케네디는 평화를 “인간성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현실주의자 케네디는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달성 가능한 평화”, 또는 “일련의 구체적 행동과 효과적인 합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평화정치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실제적인 관점에 서 있음을 웅변한다.

삭스가 케네디의 평화연설에서 특히 부각한 것은 상대 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케네디의 연설은 미국 정부의 오랜 소련 악마화를 완전히 버리고 소련을 인간화하고 미국과 소련의 공동 이익을 강조했다. 냉전은 사실 양 진영의 수미일관하고 명료한 상대 체제 붕괴 전략과 해방정책 때문에 지속된 것이 아니었다. 최근 냉전사 연구자들이 잘 밝혔듯이, 냉전의 근본 원인은 오해와 공포의 이중적 악순환이었고 소통 실패였다. 그런 점에서 케네디의 연설은 냉전 원인과 극복 지혜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압축적으로 언급한 기념비적 자료다. 케네디가 미국과 소련 간의 “상호이해와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상당히 소박해 보이지만 당시 맥락에서 그것은 정확히 냉전의 근본 문제를 관통했다. 이 책은 그 점을 부각했다.

삭스가 주목한 마지막 특징은 케네디의 자기비판과 성찰이었다. 케네디는 연설에서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의 내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미국 내부의 인종주의 차별과 인권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내적 반성과 개혁을 요구했다. 그는 미국 내부는 “자유가 온전하지 않기에 평화가 안전하지 않다”고 고백하며 변화를 선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책은 진영 외부의 상대를 일방적으로 질타하기보다 자국의 결함을 지적하며 보편적 자유와 인권의 갱신을 통해 평화의 호소력을 높인 케네디의 소통 방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저자는 케네디의 연설을 통해 받은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그 연설들이 곧장 변화를 낳았다고 과하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케네디의 연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어 21세기 독자들의 감각에 동요를 일으킨다. 말은 영감을 주고 용기를 낳는다. 위험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오염된 말을 사용하는지, 초라한 정치가들이 얼마나 말의 오염을 통해 대안을 닫는지 잘 아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눈과 귀를 씻고 ’신평화‘의 원천을 맛보게 한다. 케네디의 통찰과 품격, 성찰과 안목, 용기와 모험, 신념과 결기, 신뢰와 호소는 모두 평화의 배음을 통해 독자들을 품는다.

힘을 통한 평화는 힘의 과시이면서 동시에 상대 힘의 강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으로 간주된 상대를 압박하면 적이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와 전략은 그것이 위험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현실적 망상이었기 때문에 거부되었다. 적으로 간주된 상대와의 공동 이익을 찾고 평화의 연루를 더 찾고 내적 성찰을 통해 보편적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다. 이 책은 바로 그것을 전한다. 한반도 남과 북의 냉전 이상주의자들에 맞서 현실주의 평화로 다시 결집하려면 이 책이 전하는 케네디의 말과 실천에 잠시 젖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