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02일
반비
출처: 반비
   

장애를 중심으로 돌봄을 다시 사유하기

– 에바 페더 키테이, 『의존을 배우다』, 김준혁 옮김, 반비, 2023

김수희(피치마켓 본부장, 전 특수교사)

네모난 바퀴를 가진 자전거가 굴러갈 수 있을까? 이 자전거를 굴려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 종종 건네는 말이다. ‘바퀴를 있는 힘껏 굴린다, 바퀴의 모서리를 깎아서 둥그렇게 만든다, 혹은 자전거를 번쩍 들고 걸어간다’라는 답이 나오고는 한다. 그런데 의외로 땅의 모양을 바꾸면(평평한 땅이 아니라 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파여 있는 땅으로) 네모난 바퀴 그대로도 자전거를 굴릴 수 있다. 세상의 ‘기준’에 도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흔히 더 노력해라, 열심히 해라,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될 때까지 도전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개인이 어떠한 성취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갖추어져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장애는 개인의 손상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가 그 손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생기는 불이익이라고 보는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반면 막상 장애인을 만나 관계를 맺고 겪어 보면 개념적으로 정리한 내용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다. 사회적인 조건과 환경이 갖춰지면 정말로 동등하게 살 수 있나? 그렇지만 모든 개인은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차별과 배제를 하지 않기 위해 하는 선택들이 정말로 장애인을 평등하게 만드는가? 무엇보다 내가 동등한 시민, 친구로 장애인과 관계 맺는데 이런 개념들이 어떤 도움이 되나? 특히 소수자 정체성과 결합하여 사회적인 개념을 재정의할 때, 옳고 그름을 포함하여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진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의 다양한 논의가 도움이 될 것이다.

에바 페더 키테이의 『의존을 배우다』는 인지장애를 가진 딸 세샤와의 삶을 통해 배운 것들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저작이다. 철학은 “사유하는 이성적 존재”를 인간의 기준으로 삼는다. 저자는 이성을 지녔는지 알기도 어렵고 이성적 능력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음악을 사랑하며 기쁨을 표현하는 딸 세샤를 보며 이런 전제 자체를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삶이라고 여겨왔던 ‘독립적인 삶’과 ‘정상성’에 관한 욕망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 애초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철학적 개념들을 검토한다.

키테이는 딸 세샤에 대한 인상적인 소개로 글을 시작한다. 세샤를 ‘장애를 가진 딸’이라고 소개함으로써 이미 불공평하게 다루었음을 고백한다. 또한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딸의 옹호자 역할을 맡기 위해 엄마로서 대신 말할 수밖에 없음을 ‘변명’한다. 가장 가깝고 구체적인 대상으로 존재하는 딸을 소개하는 것부터 철학적 인식의 시작인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인 의존과 돌봄에 대해 말하기까지 사회의 정상성에 대한 관념과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비판적 질문, 장애를 가진(가지고 태어날 것이라 예상되는) 아이의 임신 중지에 대한 논쟁 등이 쌓인다. 때로는 구체적인 삶의 경험과 사례로 때로는 철학적 사유방식과 기존 철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방식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과정에서 세샤와의 관계를 통해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되는, 비장애인 아들인 리오와 장애아 임신 중지에 관해 흥미로운 논쟁을 한다. 여기서도 사회적 맥락과 무관한 ‘선택’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선택’이 갖는 한계를 다루며, 아들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면서도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저자의 주장이 입체적으로 전개된다. 단순히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과 사유가 복합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의존’에 관한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성숙한 인간은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존은 나약함을 상징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의존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돌봄을 필요로 하고 나이가 들거나 병들면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 처한다. 장애를 가진 이들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키테이는 돌봄은 돌보는 자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행위가 아니라 돌봄을 받는 이의 수용으로 완성되는 상호작용이라고 말한다. 돌봄을 돌보는 자의 행위나 기술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받는 이의 적극적인 수용과 반응을 존중하는 ‘배려 윤리’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취약함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고 의존을 통해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 때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 모두가 한 번쯤 의존과 돌봄을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돌봄을 받는 이의 입장이 되거나, 돌보는 자가 되거나,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돌봄일까? 그렇다면 어떤 윤리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실제로 옮긴이도 「옮긴이의 말」에서 본인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의료는 돌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팬데믹 이후 돌봄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며 많은 논의들이 있었지만 정작 ‘좋은 돌봄’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필요한 돌봄 윤리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돌봄을 돌봄 행위나 기술로만 이야기하면 돌봄을 누가 어떻게 해야 하고 사회적인 비용과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같은 논쟁만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의존함으로써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고,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돌봄이 무엇인지 더 많이 묻고 이야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