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멸, 추방, 혐오 그리고 ‘핵심현장’
-백영서,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창비, 2013
김항(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지난 세기 전환기에 역사 이해, 미래 전망 그리고 현재 진단을 위한 지식의 지각변동을 이끈 몇 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그중 하나로 ‘동아시아’를 꼽는 데에 이견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소련 해체와 냉전체제 붕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에 균열을 가져왔고, 그와 연동하여 19세기 이래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역사에 대한 발본적 성찰을 촉구했다. ‘동아시아’는 이 균열과 성찰의 틈새에서 등장했으며, 이미 언제나 지리적 개념을 훌쩍 뛰어넘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내포한 채 인구에 회자되었다. 서로를 상처 입히며 전개된 근대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성찰, 냉전적 대결이 아니라 화합과 평화를 향한 미래 질서의 규범적 기초 그리고 경제 성장에 힘입어 확대된 지역 내 사람과 사물의 현재적 네트워크, ‘동아시아’는 이 모든 것을 담아내는 야심 찬 기표였던 셈이다.
‘동아시아’가 담아내야만 했던 성찰과 기대와 분석을 하나의 기획이라 말할 수 있다면, 시종일관 그 한 가운데서 고군분투했던 백영서란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귀환 : 중국의 근대성을 묻는다』(창비, 2000)로 닻을 올린 본격적인 동아시아론은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창비, 2013)을 거쳐 『동아시아담론의 계보와 미래』(나남, 2022)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전개 중이다. 같은 시기 “사회적 의제와 학술적 의제의 상호 전유”라는 ‘사회인문학’ 또한 동아시아론과 뗄 수 없는 지적 기획이었음도 기억에 새롭다. 물론 세기 전환기에 시작되어 20여 년 동안 전개된 이러한 백영서의 지적 기획이 오롯이 그만의 몫은 아니다.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던 그의 21세기는 동아시아론이 한 개인의 치열함과 성실과 혜안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많은 이들의 손과 발과 마음이 쌓아 올린 집단지성의 구현임을 증좌하는 행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영서’의 저서 한 권을 꼽으라면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이하 『핵심현장』)를 집어 들게 된다. 이 책은 백영서의 저서이지만 백영서만의 것은 아니며, 한 권의 책이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저서가 아니다. 이미 첫 장에서부터 명료하게 드러나듯 『핵심현장』은 수많은 이들과의 오랜 시간에 걸친 연대와 대화와 우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여러 논의가 하나의 결론을 향해가기보다는 마치 바통을 넘겨주기라도 하는 듯 누군가의 또 다른 이야기를 예감케 하기 때문이다. ‘핵심현장’이 ‘동아시아’라는 야심 찬 기표를 실천화하는 개념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핵심현장’은 한반도, 타이완, 오키나와 등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폭력으로 유린한 구체적 지역임과 동시에, 그런 현장을 발로 오가며 손으로 쓰다듬고 마음으로 성찰하는 가운데 가시화되는 실천적 공유지인 것이다.
하지만 『핵심현장』을 집어든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2013년에 출간된 이 저서를 정점으로 동아시아론이 서서히 식어갔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논의가 현저하게 줄었고 인적 네트워크의 활발한 교류도 뜸해졌다. 여러 요인을 떠올릴 수 있다. 백영서를 비롯한 동세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대학 및 저널 일선에서의 은퇴,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직접 교류의 원천적 차단과 단절 그리고 각 지역/국가의 정치 상황 변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2010년대 이후 ‘동아시아’는 과거, 현재, 미래를 전유하는 하나의 복합적 기획으로서는 예전만큼 활발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이 전하려 한 바통을 어디에 떨어트렸을까? 아쉽게도 아직 정확한 분실 지점을 찾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바통을 잃어버린 것이 앞에서 말한 요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동아시아’ 기획이 한창일 때, 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정치적 분열 또한 가시화되었다. 그것은 혐오라는 물결이었다. 난민, 외국인, 여성, 퀴어집단 등 이른바 마이너리티에 대한 노골적 배척과 증오가 거리에서 표출된 것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물론 각 지역과 국가마다 표출의 양상은 상이했지만, 냉전체제 아래에서의 레드 포비아와는 질적으로 다른 정치적 분열이 증폭한 것이다. 그 배경을 여기서 상세히 분석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혐오의 표출이 역사 기억을 둘러싼 쟁투의 결과임은 확인해 두어야 한다. 미국 주도의 안보전략 아래 억압되었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기억은 세기 전환기에 새로운 역사 정의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각 지역과 국가의 정치적 정체성 또한 성찰되어야만 했다. 어떤 공동체에 귀속된다는 사실은 다른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폭력을 전제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직시와 성찰 없이 정치적 정체성의 안정은 불가능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성찰의 요청은 2000년대 들어 혐오의 물결을 추동하게 된다.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 타자에 대한 역사적 폭력에서 기원함을 직시하는 일, 그것은 고도의 윤리적이고 역사적인 성찰을 요청한다. 그런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비겁에서 정치적 정체성은 극단적인 역사 수정주의와 정치적 포퓰리즘을 통과하여 위생적인 국민 신화에 의존하게 된다. ‘동아시아’ 기획은 이런 신화 앞에서 위협받고 있다. 성찰을 거부함과 동시에 그 윤리적 힘을 마이너리티에 대한 폭력으로 전유하는 혐오의 물결로 ‘핵심현장’에 새겨진 역사의 상흔은 씻겨 나가버린 셈이다.
『핵심현장』을 다시 펼치며 그간의 사태를 떠올려본다. 박멸과 추방을 외치는 이들에게 ‘핵심현장’은 어디일까?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의회에도 자리 잡은 혐오의 물결 앞에서 ‘동아시아’는 과연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성찰, 분석, 전망을 위한 지적 공유지를 재생시킬 수 있을까? 답은 저자가 아니라 그의 바통을 잃어버린 이들의 몫일 터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핵심현장』을 펼친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연동하는 동아시아’란 발상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이때 연동은 단순히 동아시아 내 각 지역이 얽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어느 지역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이미 언제나 다른 지역과의 중층적 관계 속에서 사고해야 한다는 인식 방법이다. ‘핵심현장’이란 그 연동의 방법을 가장 강렬하고 압축적으로 실천한 산물이기에 ‘지적 공유지’가 될 수 있다. 백영서는 1부에서 ‘동아시아’ 기획의 20년을 되돌아보고 ‘지적 공유지’ 생산을 위한 실천 과제를 제시한 뒤, 2부에서는 ‘주변에서 본 중국’이란 주제 아래 중국의 역사, 현재, 미래를 ‘핵심현장’으로 전유한다. ‘동아시아’ 기획이 어딘가에 잃어버렸던 바통은 이 책에서 백영서가 던졌던 여러 갈래의 물음들을 숙고할 때 다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