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02일
글항아리

싸우지 않아서 생겨나는 것

-나오미 클라인, 『도플갱어』, 류진오 옮김, 글항아리, 2024 최민우(소설가) 캐나다 작가 나오미 클라인은 『노 로고』, 『쇼크 독트린』 등의 저서를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착취 전략을 파헤침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진보적 행동가다. 이런 소개에 말을 보태면 보통 다음과 같은 단어가 더 따라붙는다. 도발적인, 단호한, 예리한, 논증적인, 실천적인 등등. 이 단어들을 목걸이로 꿸 수 있는 실은 ‘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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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

젠더와 남성성/들을 ‘관계’로 바라보기

― R. W. 코넬, 『남성성/들』, 안상욱·현민 옮김, 이매진, 2013 김소라(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강사) 최근 우리 사회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정치적 성향과 실천,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를 선동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남성성’이라는 틀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와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그간 페미니스트들은 한국 사회에서 발견되는 남성성의 특성을 ‘식민지 남성성’으로 이해하고, 젠더폭력에서 발견되는 남성성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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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구인가, 국가/민족/나라 안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기

― 조앤 W. 스콧, 『Parité!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 국미애 외 옮김, 인간사랑, 2009 배은경(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의 표지에는 빠리떼(Parité)라는 커다란 캘리그래피가 그려져 있다. 패러티(parity), 균등(均等) 정도로 번역되는 이 단어가 책의 원 제목이다. 이 글에서는 책에서 사용된 ‘남녀동수’라는 말 대신 ‘빠리떼’라는 원어 발음 표기를 사용하고자 한다. 단순히 선출직 공직에 남녀가 50/50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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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한국문학의 저력

― 황정은,『야만적인 앨리스씨』, 문학동네, 2013 유희석(문학평론가, 전남대 영어교육과 교수) 황정은은 한국사회의 고단하고 빠듯한 사람들에 드리운 짙은 어둠을 끈질기게 응시하면서 그 어둠에서 희미하게 밝아오는 삶의 양상을 시적으로 감지하는 작품을 다수 써냈다.『야만적인 앨리스씨』도 그중 하나이다. 문장은 거침없고 투박하면서도 세심하고 섬세하다. 이런 문장들의 행간에 때때로 묵직한 침묵도 실리는데, 경청하는 독자라면 작중에 그려진 인물들의 각양각색 모습과 이들이 제각각 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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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서사의 보고 『완월회맹연』

―완월회맹연 번역연구모임, 『현대역 완월회맹연』(1~6권), 휴머니스트, 2022 김경미(이화인문과학원 교수) 『완월회맹연(玩月會盟宴)』은 안겸제(安兼濟)의 어머니 전주 이씨(1694~1743)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대하장편소설이다. 총 180권에 달하는 분량은 현재 출간되고 있는 현대역본으로 추산해 보면 4~5백 쪽 분량의 책 18권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낯설 수 있다. 가람 이병기가 1940년 조선어문학 명저 가운데 이 작품을 포함시키고 “인간행락(人間行樂)의 총서”라고 소개했으나 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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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만든 비가시성에 맞서는 글쓰기

―롭 닉슨, 김홍옥 옮김,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에코리브르, 2020 공유정옥(직업환경의학과 의사) 한량없이 느리게 일상적으로 계속되며 피해가 나중에 드러나는 ‘느린 폭력’이 있다. 유해화학물질이나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과 공기와 토양을 통해 서서히 병드는, 개발 혹은 보존이라는 명분으로 대를 이어 살아온 땅과 공동체를 빼앗긴 후 난민이 되어 떠돌거나 반대로 보호구역에 격리되는, 종전 후에도 삶터에 남겨진 불발탄과 지뢰와 방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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