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4월 01일

‘우리 모두’는 누구인가, 국가/민족/나라 안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기

― 조앤 W. 스콧, 『Parité!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 국미애 외 옮김, 인간사랑, 2009 배은경(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의 표지에는 빠리떼(Parité)라는 커다란 캘리그래피가 그려져 있다. 패러티(parity), 균등(均等) 정도로 번역되는 이 단어가 책의 원 제목이다. 이 글에서는 책에서 사용된 ‘남녀동수’라는 말 대신 ‘빠리떼’라는 원어 발음 표기를 사용하고자 한다. 단순히 선출직 공직에 남녀가 50/50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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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한국문학의 저력

― 황정은,『야만적인 앨리스씨』, 문학동네, 2013 유희석(문학평론가, 전남대 영어교육과 교수) 황정은은 한국사회의 고단하고 빠듯한 사람들에 드리운 짙은 어둠을 끈질기게 응시하면서 그 어둠에서 희미하게 밝아오는 삶의 양상을 시적으로 감지하는 작품을 다수 써냈다.『야만적인 앨리스씨』도 그중 하나이다. 문장은 거침없고 투박하면서도 세심하고 섬세하다. 이런 문장들의 행간에 때때로 묵직한 침묵도 실리는데, 경청하는 독자라면 작중에 그려진 인물들의 각양각색 모습과 이들이 제각각 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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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서사의 보고 『완월회맹연』

―완월회맹연 번역연구모임, 『현대역 완월회맹연』(1~6권), 휴머니스트, 2022 김경미(이화인문과학원 교수) 『완월회맹연(玩月會盟宴)』은 안겸제(安兼濟)의 어머니 전주 이씨(1694~1743)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대하장편소설이다. 총 180권에 달하는 분량은 현재 출간되고 있는 현대역본으로 추산해 보면 4~5백 쪽 분량의 책 18권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낯설 수 있다. 가람 이병기가 1940년 조선어문학 명저 가운데 이 작품을 포함시키고 “인간행락(人間行樂)의 총서”라고 소개했으나 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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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만든 비가시성에 맞서는 글쓰기

―롭 닉슨, 김홍옥 옮김,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에코리브르, 2020 공유정옥(직업환경의학과 의사) 한량없이 느리게 일상적으로 계속되며 피해가 나중에 드러나는 ‘느린 폭력’이 있다. 유해화학물질이나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과 공기와 토양을 통해 서서히 병드는, 개발 혹은 보존이라는 명분으로 대를 이어 살아온 땅과 공동체를 빼앗긴 후 난민이 되어 떠돌거나 반대로 보호구역에 격리되는, 종전 후에도 삶터에 남겨진 불발탄과 지뢰와 방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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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중심으로 역사를 쓴다는 것

―킴 닐슨, 김승섭 옮김, 『장애의 역사』, 동아시아, 2020 이지은(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장애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킴 닐슨의 ‘미국의 장애사(A Disabilit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우리가 지금 장애라고 부르는 개념, 장애인이라 불리는 범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경험이 만들어져 온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는 동시에, 그것이 미국이라는 국가가 만들어져 온 과정과 어떤 방식으로 얽혀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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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시장, 지체할 수 없는 돌봄

: 클라우디아 골딘, 김승진 옮김, 『커리어 그리고 가정』(생각의힘, 2021) 최시현(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잠시 상상해보자. 같은 대기업에서 만나 결혼해 5살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있다. 아침에 씩씩하게 등원을 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구토를 한 후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며 어떻게 할지 묻는 교사의 전화는 둘 중 누구에게 걸려올까. 그리고 긴급하게 결정된 주말 출장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야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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