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09월 16일
출처: 생각의힘_제공
   

탐욕스러운 시장, 지체할 수 없는 돌봄

: 클라우디아 골딘, 김승진 옮김, 『커리어 그리고 가정』(생각의힘, 2021)

최시현(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잠시 상상해보자. 같은 대기업에서 만나 결혼해 5살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있다. 아침에 씩씩하게 등원을 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구토를 한 후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며 어떻게 할지 묻는 교사의 전화는 둘 중 누구에게 걸려올까. 그리고 긴급하게 결정된 주말 출장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야근은 누가 도맡게 될까. 많은 경우 어린이집의 전화는 주양육자로 가정되는 여성이 받을 것이고, 장시간 과로가 필요한 일자리는 남성이 맡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정과 일터의 불안한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모두가 믿고 실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방식의 지속은 성별임금격차를 악화시키고 여성의 커리어를 지연시킨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이 수십년을 바쳐온 질문이 바로 이 문제, “성별임금격차의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골딘의 주장은 명료하다. 1878년에서 1978년, 100년 사이 출생한 미국의 대학졸업자 이상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종단분석결과 미국에서 여성은 20세기 상당 기간 법적, 사회적,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커리어와 가정을 동시에 갖지 못했다. 예컨대 1940년대까지도 기혼여성의 고용을 제한하는 법이 존재했다. 최근 수십 년 사이 명시적 차별은 폐지되었고 피임 및 생식기술로 인해 출산을 늦출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부부가 돌봄노동을 공평하게 부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관리직으로의 승진은 여성에게 턱없이 불리하고 성별임금격차도 여전하다.

골딘은 남은 이 격차의 요인을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jobs)”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책의 두 핵심개념 중 하나인 ‘탐욕스러운 일자리’는 저녁이나 주말에도 주당 70시간 일하는 사람이 그의 절반 수준인 주 35시간 일하는 사람에 비해 임금을 두 배 이상 받는 경우 즉, 노동시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시간당 임금을 만들어내는 일자리를 말한다. 이것은 장시간 과로문화, 남성적 경쟁문화와 함께 강화된 것으로 1980년대 이후 소득불평등이 늘어남에 따라 이러한 ‘탐욕스러운 일자리’의 보상도 증가했다. 고학력자들이 재직하는 많은 기업과 학교, 기관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대체불가능한 소수 인력에 불평등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지출하는 방식으로 조직과 자본을 키워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탐욕스러운 일자리’의 선호체계에 젠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은 양육을 위해 더 짧은 시간 일하며 적당히 낮은 임금을 받는 유연한 일자리를 택하고, 반대로 남성은 가구소득을 극대화하고자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더 많이 선택한 결과 성별임금격차가 발생하고 지속된다.

서두의 장면을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듯 골딘의 분석은 낯설지 않다. 골딘은 여기에 온콜(on-call)개념을 덧붙여 설득력을 높인다. 온콜이란 병동의 간호사들이 환자와 의사의 호출에 늘 대기상태로 있는, 지체없이 대응할 태세를 말한다. 골딘은 돌봄과 커리어 모두에서 온콜노동은 필수적인데 가정에서의 온콜은 여성들이 도맡고, 직장에서의 온콜은 남성들이 도맡는 방식의 분업을 통해 가구의 기능과 소득을 최대화하는 방식을 택해왔다고 지적한다. 부부 중 한 명은 벌 수 있는 최대한의 소득을 갖고 다른 한 명은 가정을 돌보면서 적당한 커리어를 유지하는 것이 가정경제에 유리하며 만약 부부간 공평성을 위해 온콜노동을 절반씩 부담하면 가정경제에 미치는 손실이 오히려 커진다는 것이다.

골딘의 분석은 100년이라는 기간 동안 각 세대, 시기의 특징과 그 인과관계를 훌륭히 분석하고 무엇보다도 고등교육을 받은 미국 여성들이 기성세대의 실수를 바로잡고 새로운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가며 성평등을 위한 투쟁을 역사적으로 오래 지속해왔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골딘 분석의 약점은 이러한 온콜에서의 선택을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가정에서의 온콜은 왜 여성에게 주로 맡겨지는지, 남성은 어떤 이유로 적극적으로 돌봄경제에 가담하지 않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경제가 아닌 문화의 영역이다. 현대사회에서 나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조각은 커리어의 영역이다. 일은 몰입감을 주고 소명의식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 스스로 기능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정체성에 일이 주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반면 돌봄의 영역은 필수적이지만 소모적이고 자족적인 것으로만 남아있다. 돌봄의 가치가 충분히 발굴되고 실행되지 않았기에 골딘 논의에서도 여전히 커리어와 가정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립적이고 이분법적인 것으로 가정되어있다. 게다가 커리어 영역에서의 성공은 개인, 특별히 여성에게 영광을 줄 것이라는 전제가 조용히 깔려 있다.

여기,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성별 간 임금격차는 31.1%로 남성 근로자가 100만원을 받으면 여성 근로자는 69만원을 받는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현 정부가 주장하는 69시간 근무제, 업종별 차등 최저임금 논의는 골딘이 주장하는 노동트랙의 다양성, 다시 말해 독식체계를 부수고 유연한 일자리로 생산성을 발휘하게 하자는 노동구조의 변화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게다가 다둥이행복카드, 다자녀가구 주택특별공급제도와 같이 출산과 양육을 경제적 인센티브로 이해하게 만드는 정치도 인간이 가진 상상력과 복잡한 수행성을 낮게 평가한 결과로 보인다.

골딘의 작업은 성평등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 데이터로 분석한 만큼 낙관적 전망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 사람의 커리어 유지 기간은 길어야 30년 정도로 한 번뿐인 자기 삶을 살아가는 현실의 여성들에게 이 변화는 너무 느리거나 감지되지 않는다. 심지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선언이나 미국의 낙태죄 재인정과 같은 백래쉬 현상은 자신의 커리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만에 하나라도 가족으로 흡수되어서는 끝이라는 젊은 여성들의 4B운동(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을 추동시킨다. 장기적 데이터가 보여주는 머나먼 낙관의 길에 동참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쟁취해낸 대졸백인여성의 커리어를 위해 수많은 이주민여성이 돌봄경제에 장기간 배치되어 온 것은 자명하지만 은폐된 현실이다. 이 책에서 주된 사례로 가정하는 변호사, 교수, 약사 등 전문직 여성의 삶과 비전문직 특히, 돌봄경제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아 골딘의 경제학적 공헌이 모든 이의 복지와 생존을 위한 정치적 기획과 만나는 방안은 무엇일지 함께 모색해 볼 때이다. □